땅의 옹호 (김종철 평론집, 녹색평론사)

  • 농업문명이 발전하여 근대산업문명이 이룩되었다.
  • 경제성장과 개발을 통해 세계의 빈곤과 불평등구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 민주주의를 실현되기 위해 최소한의 경제적 풍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 자본주의의 악은 사회주의적인 방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 농업중심사회로는 문명된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 근대산업문명의 발달과 민주주의의 성숙, 세계의 평화는 비례관계에 있다.

근대화교육을 받고 근대산업사회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를 욕망하며 살아온 우리들에게 낯설지 않은 명제들이다. 1차산업 농업, 2차산업 공업을 거쳐 3차산업인 서비스업 단계의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를 자랑스러워하도록 교육받았으니 이런 선형적인 역사인식과 근대주의적인 발전사관을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었던 것도 당연하다.

수십년간 인간과 환경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는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이 명제들이 얼마나 허망한 믿음인지 보여준다. 인류는 원시적인 농업문명에서 산업문명으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산업화, 근대화가 본질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는 타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로 인해 농(農)의 세계와 가치, 그리고 그에 기반한 공동체가 붕괴되었음을 이야기한다. 폭력성을 내재할 수밖에 없는 성장과 발전의 논리 -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닥친 생태적 위기, 심화되는 빈부격차, 위협받는 민중의 평화 등 인류공통의 난제들은 '우정', '환대'의 가치를 되살리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는 오직 자치와 자율을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와 그에 기반을 둔 농적 순환사회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 강조한다.

그 연륜만큼이나 넓고 깊은 지적토대를 갖춘 저자는 일찍이 산업화 자체의 내재적 악을 꿰뚫어 본 간디의 혜안과 '우정'과 '환대'라는 철저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는 보살핌의 미덕을 강조하는 철학자 이반 일리치의 사상을 깊이있게 소개한다. 사회의 부조리에 절망하고 선형적인 발전사관의 덫에 걸려 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땅의 옹호'는 인문학으로 인도하는 멋진 입문서가 되었다.

작지 않은 깨달음과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환대(hospitality)' 에 관한 이야기.

(중략)..."가장 좋은 것이 부패함으로써 가장 나쁜 것이 되어버린" 이 경험은 4세기에 고대 로마에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됨으로써 비롯되었다. 일리치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표현되어 있는 것과 같이, 신분, 인종, 종파, 남녀노소 구별없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하여 표시하는 자발적인 환대의 정신이었다. 그리하여, 지하에 숨어서 지낼 수밖에 없는 고난 속에서도 초대 기독교인들의 가정에는 예외없이 세가지 물건이 늘 갖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양초 하나, 마른 빵 한 조각, 담요 한 장이었다. 왜냐하면 밤중에 누구든 길을 가는 나그네가 대문을 두드리면 어느 때라도 그를 초대하여 자신의 집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도록 촛불로 안내하여, 준비된 빵으로 허기를 면하게 하고, 담요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인 환대의 풍습은 로마의 국교로 된 기독교 교회가 가난한 사람, 집 없는 사람, 떠돌이 행려병자 등을 제도적으로 구제하는 기관들을 설치, 운영하기 시작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기독교도들의 가정에서 나그네를 위한 양초와 빵과 담요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 것들을 더이상 준비해두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일리치는 이러한 '환대의 제도화'에서 근대국가의 복지체제의 기원을 보고 있지만, 하여튼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의 전적인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던 타인에 대한 친절한 행위, 보살핌의 행동이 이처럼 공적인 기관 혹은 전문가의 일이 됨으로써, 적어도 서방 기독교 사회에서 인간은 타자에 대한 우애의 자발적 표현이라는 인간으로서의 가장 좋은 자질을 기르는 기회로부터, 교회는 자기도 모르게 사실상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중략)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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