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명은 실패했고 서양문명은 성공했다.

인류의 두 메이저 문명, 중원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문명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문명을 비교 해석하며 저자가 내린 거칠고 단호한 결론이다.  일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저자의 결론은 서양의 내적 형질이 동양문명에 비해 태생적으로 우월하다는 관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중원이라는 확고한 중심을 가진 정치지향적인 동양문명과 지중해라는 바다를 끼고 느슨하고 분방하게 발전해 온 서양문명은 그 발생의 지리적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지리환원론에 일차적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동양문명은 '통일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고 서양문명은 '분열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두 문명의 노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이야기한다.
저자 남경태는 두 문명을 시간적 공간적 연속성이라는 틀을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넘나들며 비교 해석함으로써 현재 서양문명앞에 무릎을 꿇고 정체정까지 위협받고 있는 동양문명,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 냉정하게 평가하기를 주문한다.

평범해서 더 깊이 매혹되는 '역사'

이 책은 굉장히 평범한 제목으로 시선을 끈다. '역사'.  또한 700페이지에 가까운 만만치 않은 두께로 더욱 시선을 끈다. 깔끔하고 단정한 편집디자인은 교과서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런 모범생같은 요소들이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제목과 북디자인은 뭔가 있을 것 같은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그 선택은 탁월했다.

'접시돌리는' 저자 남경태

이 퓨전(?) 인문학자 남경태의 스타일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토킹하고 싶은 저자 하나 발견했다' 이다. 이 책을 기존의 전통적인 역사서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시간도 공간도 그에게는 구속이 되지 못한다. 한국을 비롯, 동서양을 '되는대로' 분방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의 입담, 트렌디한 비유와 거칠고 직설적인 필체는 시종 박진감이 넘치고 힘이 있다. 굵직굵직하게 맥을 짚어가는 논리전개는 화끈한 인기 역사강의를 듣는 듯 흥분되고 재미있다. 곁가지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상식은 부록이다. (잡지 연말호의 부록처럼 빵빵하다.) 정통 역사학자가 아닌 사회학을 전공한 인문학자라는 배경 덕분인지 학구적인 엄격함을 살짝 빗겨나 경쾌하고 발랄하다. 따분하고 단절적인 역사서에 힘들었다면 서양문명의 접시와 동양문명의 접시를 양손에 들고 멋진 쇼를 벌이는 남경태의 '접시돌리기' 쇼는 멋진 선택이 될 것이다.

비약, 생략, 불친절, 그리고 모순?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저자의 색깔과 의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두 문명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이 '역사적 무의식'이라는 유전자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서로 만나고 교차하고 접점을 이루는 장면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두 문명의 성격과 차이를 파악하고 그 역사에 기반하여 현재를 설명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가 있기에 군데군데 일반 역사서에서 보기 힘든 비약이나 생략 등이 있다. 컨셉이 분명하고 명확하기에 어쩔수없이 보여지는 단면적인 느낌이 있다. 또한 '역사는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라는 저자의 주장과 모순되게 일면 약육강식의 진화론적 측면, 선형적 발전적 역사인식의 논리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이 책의 의도와 맞물려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독자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할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매력적이다. 저자 스스로 서문에서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는 귀여움(?)을 보여주고 있기에 더더욱...

타고난 이야기꾼 남경태

디테일한 모든 부분을 떠나 저자 남경태의 입심과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힘과 리듬에 반해 버렸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구어체 표현들과 깔끔하고 간결한 호흡, 박진감 넘치는 필체. 역사서를 읽으며 경험하는 희노애락은 매우 참신했다. 이 책을 일반역사서로 읽지 말아 달라는 저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일반역사서로도 너무 멋진 책이라고 느꼈다. 물론 컨셉을 가진 인문교양 역사서로는 말할 것도 없고.


도서출판 들녘 www.ddd21.co.kr
mbc 뉴스투데이에 소개된 '역사' 동영상보기
[am booked] 역사 (남경태, 들녘) : page.artistic 2008. 12. 1. 15:39 : Posted by 바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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